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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ctus Solen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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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집덩어리

2018.12.23 19:09, 일기/치료 일지 게시판 - Pectus Solentis

12월 17일 일기 (벌써 1주일 전이네.) 의 덧글에서 말했던대로, 그간의 내 대인관계를 구성하는 두 가지 감정의 축은 바로 '분노'와 '공포'였는데, 그 때 정신과에서 그걸 설명하면서 의사에게 "예전에는 그 감정의 축이 '분노 또는 공포를 느끼는' 내 자신"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감정의 축이 "그런 감정을 '유발'하는 상대방"으로 바뀐 것 같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 사실에서 뭔가가 하나 더 떠올랐다.

그 이전까지는 그런 감정에 부딪칠 때 "내가 뭘 잘못한 거 아닌가" 라는 감정에 자주 휩싸였다면, 그 이후부터는 그런 감정을 유발하는 상대방들을 비난하는 감정에 자주 휩싸이게 됐다고. 그나마 정서인지학 시절에는 "설믜"라는 (지금은 그 단어를 입에 담는 것마저 힘든) 개념 덕분에, '정서 수준'이 충분히 높은[각주:1] 사람들에게서 그런 감정을 느낄 때는 혹시 그 상황에서 내가 잘못했었던 것인가 하는 자기 의문을 가질 수 있었지만, 그 사건 이후부터는, 아마도 "설믜"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는지, 대인관계에서 분노 또는 공포를 느낄 때 그 대상이 잘못한 것이라는 생각만을 (마치 정서인지학 시절 "설믜가 없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느꼈듯이) 하게 된 것이었다고.

그래서 내가, 그 사건 이후부터는 내가 잘못했다는 (특히, 남들에게 정서적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상황에서 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어려워졌던 것이라고.

2016년의 학내 대자보 게시 사건 때,[각주:2] 물리학과의 적지 않은 학우들이 "당신이 게시한 대자보 때문에 학과 전체의 의견이 당신과 같은 것으로 오인되고 있으니 대자보에서 학과 기명을 빼주기 바란다" 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대자보에 소속 학과를 밝히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을 밝힌다고 해서 대자보 게시자의 의견을 학과 전체의 의견으로 보는 독자는 없을 것이라며 (사실 이게 사실이기도 하고.) 그 의견들을 "밟았었다." 

하지만 나중에[각주:3] 들어보니 학과의 어떤 선배는 대자보가 어딘가의 인준을 받고 게시되는 허가제인 줄 알고 있었기도 했고, 다른 후배에게서는 실제로 내 대자보 때문에 "물리학과는 저런 소리를 해도 괜찮은 데냐" 라는 약간 학과 자체를 비난하는 듯한? 그런 이야기가 들렸다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예전의 - 특히 2013년 초, 내가 다른 글에서는 '정서인지학 시절'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그 시절의 - 나였으면, 학과 내에서 그런 '얼토당토않는' 의견이 나온 것에 대해서 일단 상대측의 말들을 들어보려는 자세를, 2016년 그 때보다는 더 낫게 취할 수 있었을까.


이번 일기는 미완성이다.

최근 몇 달 전부터, 이 블로그에 내 치료 일지를 기록했던 것은 정신과 상담을 위해서 - 그러니까, 정신과 의사에게 이 블로그의 치료 일지를 그대로 보여주면서 상담을 받기 위해서 - 기록했던 것이었는데, 지금은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설믜"가 무엇인지를, 타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것을 설명하기 더 쉬워질 때, 이 글에 덧글로 설명하도록 하겠다.

  1. 어떤 사람의 정서 수준이 높냐 낮냐를 판정하는 것이 내 자의에 의한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 그 시절에도 내가 점점 미쳐가고 있었음을 주지할 수 있는 하나의 매개체가 되었었다. [본문으로]
  2. 아실 사람들은 이미 다들 아시겠지만, 2016년 때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총여학생회를 비판하는 수많은 대자보를 게시했던 물리11 윤경석이 바로 나다. [본문으로]
  3. 나중에라봤자 그 사건 1-2달 후였기는 하다. [본문으로]
Pectus Solentis Scrips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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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믜"란 ("눈썰미" (눈 + -ㅅ- + 설미) 라는 단어를 구성하는) "설미"라는 단어의 어원이 된 고어로, 이것이 있는 사람만이 서로의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상처를 알아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에서 만든 단어였다. 엄밀히 말하면 실제 있던 단어의 차용이지만, 그런 의미로 썼던 건 분명히 내가 새로 부여한 의미였으니까 "만든" 단어라고 표현했다.

    그 시절에는 상당히 많은 의미를 담아두고 사용했던 단어였는데, 이 단어와 개념 자체가 그 시절에 내가 미쳐가는 데 상당히 큰 역할을 했었던 단어였기 때문에 지금은 그 의미를 떠올리는 것마저 힘들다.

  2. 오늘 정신과를 방문해 봤는데, 좀 괜히 갔나 싶은 느낌이 들었다. 설믜라는 개념이 정확히 뭐였는지 설명하지도 못했고, 의사는 Here & Now에서 잘 사는 게 첫번째라고 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