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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ctus Solen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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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안 듣는 청개구리의 유서

2014.07.24 19:28, 분류없음 게시판 - Pectus Solen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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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2012년 이 블로그 데이터를 집컴에다가 복원하는 방법을 알게 되고 그대로 복원해서, 일단 그 때 썼던 이 소설만 끌어올려본다.


엄마 나야. 서연이. 기억나? 엄마 지금 나 때문에 거기 누워있잖아...

내가 많이 못됐지? 그날 뒤로 정신병원... 가서 검사 받아 봤어. 거기 의사 말에 내가 무슨 경계선 성격장애인가 뭔가 그거라고 하더라고. 처음에는 내가 이렇게 멀쩡한데 내가 뭔 장애야, 그러면서 엄청 화도 났었거든? 기억나? 나 그날 엄마가 해주는 밥이 오늘은 왜 이렇게 맛없냐고 그러면서 전부 다 팽개쳤던 거...

많이 힘들었을 거야 엄마. 기껏 딸자식이라고 놔둔 게 엄마한테 이런 모습밖에 못 보여줘서. 그리고 엄마가 나 때문에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런 건 생각도 못 하면서 괜히 나만 힘들다고 엄마한테 그렇게 못되게 한 거... 엄마. 많이 갑갑하지? 내가 너무 원망스럽지?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 아냐 엄마...

그동안 나도 많이 힘들었어. 처음엔 내가 이런 약 왜 먹어야 되나, 정신병원 가야 될 사람은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인데 왜 내가 이런 고생을 하고 있나... 정말 많이 원망스러웠어. 나 치료해 주시던 선생님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 거기 누워있는 지 3년쯤 됐나? 엄마가...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엄마가... 나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거... 그걸 깨닫게 되고 나서부터야 내가 좀 미친년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 때부터야 내가 정신을 차린 것 같아. 그래봤자 사람들 눈에는 그게 그거였겠지만, 그 때부터 내가 정말 치료를 받아야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

아, 맞다! 엄마. 이걸 얘기 안 했구나. 선생님이 나 이제 다 나았다고 했다? 이제부턴 병원 안 와도 된대. 이제부턴 서연씨, 스스로 자기 삶을 개척해 가도 될거래. 서연씨, 이제 더 이상은 환자 아니래. 근데 나. 지금까지 엄마랑 같이 못 보낸 시간들... 엄마 기쁘게는 못 해드릴 망정 엄마 마음에 대못이나 박았던 그 시간들... 내가 어떻게 해야 돌려받을 수 있을까.

아 맞다. 엄마 못 낫는댔지... 난 이렇게 나았는데... 나 때문에 엄마가 이렇게 됐는데 나는 낫고 엄마는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돼? 너무 슬프다... 그럼 이 세상에선 나랑 엄마랑 같이 시간 못 보내는 거야? 이러면 안 되잖아...

먼저 가서 기다릴게. 이 세상에서 같이 시간 못 보내면 저 세상에서 같이 보내면 되지. 그게 뭐 대수야? 어차피 엄마. 조금만 있으면 나 따라올 거잖아. 저 세상에선 다시는 엄마 속 안 썩이고, 건강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저 세상에서 행복하게 지내자. 엄마. 알았지?

 - 사랑하는 엄마 딸 서연이가


길을 걷다가 이번 소설의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길거리에서 쓰러져서 통곡을 하고 싶은 것을 겨우 참고 PC방으로 들어와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중이다. PC방인 이상 각오해야 하는 것이었겠지만, 옆사람들은 전부 게임을 하고 있는 데서 울면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기분도 참 반어법적인 의미로 상쾌하다.

http://solentis.tistory.com/471 이 글에서 필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울증은 치료가 효과를 보기 시작하는 시점이 제일 위험하다고 하지. 그 전까지는 자살할 의욕마저 없어서 어떻게든 살아 있는데, 치료가 효과를 봐서 삶의 의욕이 되돌아오기 시작하면 자살할 의욕이 돌아와 버려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이 말, 경계선 성격장애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치료가 효과를 봐서 이들 자신이 눈 앞에 보이는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게 되면... 필자는 이 뒤를 묘사할 자신이 없다.

부족하게나마 '이 뒤'를 묘사할 시도를 해 본 셈이다. 경계선 성격장애 환자들은, 필자가 이 글에서 묘사한 것 같은 이런 기분이 절대로 터무니없는 기분이 아님을 다들 알고 계실 것이다. 


이하 작가의 변. (누르면 펼쳐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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