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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ctus Solen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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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때 썼던 거

2015.08.12 11:37, 분류없음 게시판 - Pectus Solentis
물리학(物理學)은 문자 그대로 세상 만물의 이치를 설명하는 학문이란 뜻이다.
영어의 Physics란 말은 라틴어의 Physica에서 온 말인데, 이 역시 세상 만물의 이치를 설명하는 학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물리학은 모든 자연과학의 근본이자 이 세상을 설명하는 모든 학문의 근본이 된다. 라틴어의 Physica는 원래 자연과학을 뜻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한자로도 '물리 과학'이라고 쓰면 그것을 자연과학 전체를 대유하는 말로 쓰일 때가 있다. 따라서 이 장에서 '물리학'의 의미로 설명하는 것은 사실은 모든 자연과학에 그대로 적용되는 성질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더 들어가기에 앞서 物理學이라는 세 글자에 담긴 의미를 파헤쳐 보자.

物(사물 물). 이는 물리학이 연구할 대상을 나타낸다. '물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는 철학을 연구해야 하겠지만, 대체로 우리가 '물질'이라고 하면 '우리 모두의 5감을 사용해서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하자고 하면(주석1) 반대 의견을 제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형이상학적 대상을 형이상학적 대상으로 대한느 것은 그것이 우리 '모두'의 5감을 사용해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으로, 만약에 형이상학적 대상이 그 가리개를 벗고 우리 '모두'의 5감에 모습을 비친다면 우리는 그 존재를 형이하학적 존재를 대하듯이 대할 것이라는 것은, 신(神)에 대한 언급 중 적지 않은 수가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다.
위에서 '우리 모두의 5감'을 언급한 것은, 하나의 '물질'은 우리들 중 누가 관찰하더라도 '똑같은 그 물질'로 느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이 Liber Maximus Physici는 누가 봐도 Liber Maximus Physici인 것이다. (다만 이 책에 대한 주관적인 성질은 이 책을 보는 사람 모두가 각각 다 다르게 느낄 것이다. 만약에 Liber Maximus를 읽는 독자 3만명이 전부 이 책을 '지루하다'라고 느낀다고 해도, '어디가 어떻게' 지루한지에 대한 느낌은 그 3만명이 각자의 느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이 책이 Liber Maximus라는 책이라는 것 자체는, 이 책을 보는 사람들 모두가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들이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Liber Maximus의 감상을 물질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다)(주석2) 여기서 물리학이, 나아가 자연과학이 갖는 중요한 원칙 하나를 알게 된 셈이다.
- 재현 가능성 : 하나의 물리적 현상은 같은 조건에서는 누가 일으키더라도 같은 현상을 일으켜야 한다.
위에서 우리가 정의한 '물질'의 정의에서 아주 당연히 유도되는 성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이 아닌데 어떤 두 '조건'이 같은 조건인지 어떻게 아냐고 반문할 수 있다. 좋은 질문이다! 바로 물리학이 발전한 역사가 이 '조건'들 중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조건들을 우리의 인식 체계 안으로 편입시키면서 발전되어 왔던 것이다. Liber Maximus Physici III에서, 이에 대해 예를 들어 자세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주석1 : 여기서 '우리'란 우리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존재로 정의한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존재의 의식 세계는 우리가 알 수 없고 우리의 논의에 그런 존재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는데 이 질문은 이 책에서 서술하는 범위를 벗어난다.

주석2 : 그렇다면 꽃의 색깔을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느끼는 사람들, 즉 색맹들이 존재하는데 그러면 꽃은 물질이 아니냐고 할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안다. 그렇다. 꽃의 '색깔'은 물질이 아니다. 색깔은 빛을 눈이 받아들이면서 만들어 낸 신호일 뿐이다. 하지만 색맹들도 꽃을 보면 꽃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꽃은 물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서술에조차 플라톤의 이데아론, 즉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감각 기관이 만들어 낸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언급하며 반박할 사람이 있을 것으로 안다. 그것에 대해서는, 버트란드 러셀의 다음과 같은 논증으로 반박하도록 하겠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매일 보고 있는 물질들은 우리가 보지 않을 때는 존재하지 않다가 우리가 그 물질과 상호작용을 하는 그 순간에만 우리가 그 물질과 상호작용을 하는 그 모습만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해도 반박할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직관을 현저히 벗어난다. 따라서 플라톤의 이데아론 역시 우리의 직관을 현저히 벗어난다."

理(다스릴 리). 이는 물리학의 목표점을 나타낸다. '이치'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정의하기 위해서도 철학을 연구해야 하겠지만, 여러 가지 다른 사건들 중에 공통적으로 변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을 원리(元理 : 으뜸가는 이치)라고 불러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러 물질들과 그것이 엮어내는 사건들 속의 이러한 '불변의 속성'을 탐구하기 위한 작업이 바로 물리학인 것이다.

學(배울 학). 이는 물리학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나타낸다. '학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시대마다 다른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래도 우리 모두가 인정할 수 잇는 정의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위에서 말한 理를 깨닫기 위한 것이 학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더 자세히 말하면 이 理를 제외한 부수적인 것은 솎아내 가면서 세상의 여러 가지 사건들을 꿰뚫고 있는 理를 추출하기 위한 작업이 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理에 대해 그리스/라틴 문화권에서는 사실성을 중심으로, 한자 문화권에서는 당위성을 중심으로 정의했다. 따라서 그리스/라틴 문화권에서는 변하지 않는 '사실'을 깨닫기 위한 학문이, 한자 문화권에서는 사람이 언제나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을 깨닫기 위한 학문이 발달했던 것이다. 우리가 이 책에서 배우고자 하는 물리학은 그리스/라틴 문화권의 사람인 아이작 뉴턴이 창시한 학문이었고, 이 역시 '사실'의 理를 깨닫기 위한 학문이 되었다.
위에서 말했듯이 사실들 속에 숨어 있는 理를 깨닫기 위해서는 그 理라고 생각하는 것을 제외한 부수적인 것들을 솎아내 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앞의 사실들을 끊임없이 단순화하고 패턴화한다. 이러면서 우리는 여러 유사한 사실 속에 담겨 있는 공통된 패턴을 얻어낼 수 있고, 이를 우리는 理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物理學 세 글자에 담긴 의미를 전부 짚어 본 셈이다. 그런데 우리가 理를 알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이해(理解 : 理를 풀어낸다)의 지평을 넓히고 나아것 우리가 이전에는 겪지 못했던 현상에 대해서도 理解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즉 우리가 物理學을 하는 이유는 物들이 만들어 내느 여러 가지 현상을 理解하여 우리의 지식욕을 채우고 자연 속에서 더 현명하게 사고하고 행동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인류를 포함해 모든 생물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物理學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류는 아이작 뉴턴이, 수많은 주관적인 경험법칙이 두서없이 얽혀 있는 물리학이 아닌, 자신이 제창한 3가지 기본 법칙과 엄정하고 객관적인 수학적 원리 위에 이에서 유도된 법칙들이 질서정연하게 짜여 있는 새로운 물리학을 발명한 뒤부터 아주 빠르게 발전해 왔던 것이다.

앞으로 필자가 아무런 언급 없이 물리학이란 단어를 사용하면, 그것은 아이작 뉴턴에 의해서 시작된 이 '새로운 물리학'을 말하는 것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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